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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질랜드 - 뉴질랜드 정보 포털

 

신년특집 ‘뉴질랜드를 달리는 한국인’ 금주 손님으로는 현재 오클랜드에서 고등학교 교사로서 일하고 있는 이정은 씨를 초대해보았다. 2008년 2월부터 오클랜드의 마운트 앨버트 그래머 스쿨(Mount Albert Grammar School)에서 일선 고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이정은 교사는 어떤 과정을 거쳐 교사가 되었으며 오늘이 있기까지 어떤 애환이 있었는가 함께 따라가 본다.[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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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사와의 인터뷰는 이메일과 전화로 진행됐는데 보내온 답변에는 교사다운 단정함과 정확함이 배어 있었다. 정확한 맞춤법도 기자를 감탄스럽게 했는데. 한국에서 중학교 1학년만 마친 걸 감안한다면 놀라운 일이다.

이정은 교사는 1982년생으로 1996년 2월에 부모(이상길/정문희 교민)와 오빠와 함께 이민 왔다. 넬슨 Waimea College를 2000년에 졸업하고 이듬해인 2월부터 10월까지는 독일에서 1년간 고교를 다녔다. 이후 2002년부터 웰링턴 빅토리아 대학에서 언어학(Linguistics)과 일본어를 복수 전공했고 2004년 졸업한 후 2006년에는 Christchurch College of Education에서 교직과정을 마쳤다. 넬슨, 크라이스트처치, 웰링턴, 오클랜드 등 남북섬의 주요 도시를 다 거친 특이한 경력도 이채롭다.

 

다민족 다인종의 근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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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근무 중인 학교는 그녀가 교육대학원 졸업 후 부임한 첫 학교이다. 1912년 건립된 유서 깊은 학교로 2002년까지는 남학교였지만 지금은 남녀공학으로 학생 2,500여명에 전체 교사 200여명이다.

“제가 가본 어느 도시보다 더욱더 다민족인 곳이 바로 오클랜드입니다. 저희 학교에도 다양한 민족이 모여 있어 학기 초 새내기 학생들 이름을 발음하는 게 재미있기도 하구요, 이름만으로 어느 나라 아이인줄 쉽게 알 수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희망했던 직업


교사가 된 계기는 특별한데 사실 그녀는 이민을 오면서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 상황에서 어떻게 가르치는 일까지 할 수 있겠는가 싶어 꿈을 그냥 접었다. 그런데 대학졸업을 할 때쯤 영어가 더 이상 무섭지 않을(?) 수준이 됐고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이 적성에 가장 잘 맞는다는 생각에 교육대학원 원서를 내게 되었다. 그녀는 사실 교사라는 직업을 어릴 때부터 동경해 미래 희망직업란에 항상 선생님이라고 써왔는데, 본인이 교사가 되는 데 큰 영향을 준 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이렇게 덧붙였다.


“학창시절 운이 좋았는데 항상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선생님을 무척 잘 따르던 학생이었습니다. 특히 제게 영어를 처음부터 가르쳐 주셨던 Waimea College의 ESOL 교사였던 Mrs McMurray 선생님은 영어와 지식만 가르쳐 주셨던 게 아니라 이민으로 새 환경, 문화, 언어에 적응하느라 몹시 힘들었던 저를 헌신적으로 따뜻하게 감싸주셨던 분이셨습니다. 선생님 관심과 끝없는 격려로 자칫 힘들 수도 있었던 사춘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지요. 이민 1.5세로서 키위사회에 자리를 잡아 심적으로나 지적으로 건강하고 튼실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주신 그 선생님께서는 지금의 제 교직생활의 역할 모델이십니다.”

자라는 학생에게 교사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런 이유로 그녀가 더더욱 교사라는 직업을 택하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해본다.

 

자신감을 얻게 해준 사람들


“가장 큰 고비는 자신감 부족이었습니다. 항상 동경했던 일이었건만 20대 초반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정말 있었습니다. ‘과연 교사가 될 수 있을까, 받아줄 학교나 있을까?’ 또 내가 선생님이 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진짜 있는 걸까?”


교사가 되기까지 과정과 어려운 점에 대해 물어보자 이 교사는 할말이 참 많았는지 다음과 같이 길고도 자세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대답을 읽다 보니 기자 역시 우리 교민자녀들이 결코 1세대 못지 않은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그들만의 자리를 만들고자 노력 중이라는 사실에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저는 이민 1.5세로서 사춘기 때 이미 다 겪고 졸업했어야 할 ‘정체성 위기’를 20대 초,중반에도 계속 앓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여기 붙었다가 저기 붙었다 하는 이솝 우화의 박쥐인지, 그냥 반반씩 섞였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 반반이 서로 공존할 수는 있는 건지.. 등등, 그러다가 어린 나이 미국으로 이민 가 변호사가 된 에리카 킴 님의 에세이를 읽고 나는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란 깨달음을 얻었어요. 한 인간에게 뿌리란 건 참 중요하단 사실을 말이죠.”


“한때는 공부를 포기할 생각도 심각하게 고려했습니다. 사실 오기로 버텼지요. 제가 운동이나 예술에 재능도 없는데 소수민족으로 살면서 대학졸업, 소위 말하는 ‘증’이 없으면 아무 곳에서도 인정 받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언제까지 부모님에게 기대 살수는 없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대학은 나와야 하겠기에 정말 오기로 버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녀는 대학을 무사히 마쳤을 때에도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교육대학원 재학 중 1년간 휴학도 했는데, 현실도피 같았던 이 시기를 무사히 건너뛰게 해준 분들은 대학원 담당지도교수와 교생실습 때 만난 Associate Teacher 한 분이었다.


“지도교수님이나 Associate Teacher께서는 저 같은 한국인 이민 1.5세대 교사가 앞으로 뉴질랜드 교육계에서 반드시 필요할 사람이라는 걸 깨우쳐 주셨지요. 저 자신마저 의심했던 제 능력이나 자질 부분에, “넌 선생님에 대한 천부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야. 뉴질랜드 고교에선 너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해. 네가 선생님을 관두면 학교가 정말 인재를 잃는 것일 거야.” 라는 과분한 칭찬들까지 해주시면서 제 기를 살려 주셨어요.”


또한 방황하던 이 시기에 더 중요했던 건 부모님 모습이었다고 고백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일년 동안 널브러져 있던 딸을 단 한번도 책망이나 독촉조차 하지 않으시고 그저 묵묵히 기다려 주셨던 부모님의 조용하지만 무한한 사랑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그녀는 한국 부모님 대부분이 그렇듯 부모님 기대는 당연히 컸고 무척 부담이 됐다고 털어놓는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기대가 자신에 대한 크나큰 사랑의 한 표현이라는걸 알았고 그게 원동력이 돼 여기까지 왔다고 믿고 있다.


“20대 초반에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고 했는데요, 너무 멀리 있는 목표물에 지레 겁 먹었던 것 같아요. 산을 오르기도 전에 정상만 바라 보고 까마득함에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고 싶은 맘이었다고나 할까요?

 

한걸음, 한걸음 차근차근 걸으면 어느 순간 오를 수가 있는데도 말이죠. 누구든 자신만의 페이스도 있고요. 아직도 큰 일을 앞두고 겁부터 먹고 긴장하는 버릇이 있는데요 그때마다 ‘One Step at a Time.’ 하고 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곤 합니다.”

 

교사가 되려면


그녀는 지금은 캔터베리 대학에 합병된 Christchurch College of Education의 마지막 졸업생이다. 이 씨가 공부할 당시 고교 교사가 되기 위해선 우선 대학에서 최소 전공과목 학사학위(보통 3년 소요)를 딴 다음 1년 과정의 교육대학원을 따로 나와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대학에서 전공과목과 Education Paper를 통합해 4년제 대학공부를 하게 되며 그 과정 중 한번에 7주씩 교생실습을 두 번 정도 하고 있다. 이 씨의 경우에는 5주 동안 교생실습을 3번, 3개 학기에 나눠서 했다.


“이곳에서는 많은 선생님들이 보통 한 과목 이상을 가르치는데요 그래서 전공과목은 기본이고 Sub-Major 또는 Minor Subject라고 해서 다른 과목도 가르칩니다. Minor Subject는 대학교에서 교양과목 정도로 들었던 과목을 선택하면 되고 대학과목 중 100, 또는 200레벨 Paper를 공부하셨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리고 4년제 대학을 나왔다면 정식교사 자격증을 따야 하는데요, 한국에선 임용고시가 있지만 뉴질랜드에선 풀타임 교사로 2년간 근무해야 합니다. 이 기간에 학교에서는 Head of Department (학과주임) 같은 경험 많은 선생님들로부터 정기지도를 받게 해줄 의무가 있지요. 한국이 필기라면 뉴질랜드는 실기인 셈이죠.”


이 교사는, 교사직은 사람들과 교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가능하며, 준비는 첫째로 전공과 비전공과목을 균형 있게 잘 갖추어야만 나중에 취직이 쉬우며 Extra Curricular 한가지도 반드시 맡아야 하는데 그 걸 위해 특기 하나라도 잘 살려두면 학교에서는 무척 환영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조언했다.


 Do you know Takeshima?


탐방3.jpg 그녀는 교생실습 시절 겪은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했다. 당시 반에 한국학생이 많았는데 한국인이라서 한국학생들만 편애한다는 오해가 있을까 봐 신분을 숨기고 한국말도 못 알아듣는 척 연기하자 한국아이들은 일어 교사니까 당연히 일본 사람인줄 알았다는 것. 그런데 어느 날 수업 중 애국심이 투철한(?) 한 학생이 “Do you know Takeshima?’라고 뜻밖의 질문을 했다.


그러자 이 교사는 곧바로 우리말로 “넌 내가 일본사람인 것 같니?” 라고 물었고 그러자 한국 아이들이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는 것. “그 반이 ESOL반이라 한국 애들이 참 많았거든요. 그 동안 신나게 아주 편안하게(?) 한국말을 해댔는데 아마 그 순간 많이들 놀랐을 거예요.”


이 교사는 이때다 싶어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을 바로 던졌다. “너네들 수업시간에 욕 좀 하지 마아~!” 그러자 어떤 녀석은 교실바닥에 아예 드러눕는 등 한바탕 또 난리가 났다. 그런데 다음날 독도를 아냐고 물었던 학생이 미처 1교시도 되기 전 찾아와 정중한 사과의 ‘반성문’을 전달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라, 많이 놀라고 부끄러우면서 큰 용기를 냈을 그 아이를 좀더 따뜻하게 받아주지 못한 것 같아 지금도 많이 아쉽습니다. 아직도 그 편지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고요.”


근무하면서 동양인이나 한국인이기에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 묻자 담당과목이 일어라서 그런지 동양인다운 외모가 오히려 더 플러스 되는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작고 젊은 어린(?) 동양여자 선생님이라서 얕보는 학생들이 아주 극소수 있긴 하지만 그럴 때면 학교규칙에 따라 처벌하고 간혹 인종차별적 문제가 생기면 학교 측에서 오히려 강경하게 대처하는 편이라고.


이 교사는 인생을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너무 많단다. 그녀는 ‘상황에 따라, 인생의 시점마다 중요한 일 순위가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니겠냐’고 반문하며 ‘죽으라는 법은 없다!’라는 말을 인생의 좌우명처럼 여긴다고 했다.


“이 말은 긍정적 사고를 가지게 해주거든요.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느낀 적이 종종 있었지요. 그때마다 ‘죽으라는 법은 없어, 이 길 아니면 또 다른 길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저를 다독이고 도전을 계속할 용기를 얻곤 했습니다. 또 다른 좌우명 하나는 ‘하루하루 하나하나 차근차근’ 입니다.”


“제가 꾸는 좀 먼 미래 꿈은 뉴질랜드 고교에서 한국어 선생님이 된다는 겁니다. 솔직히 지금 당장도 일어보다는 한국어를 이 땅에 널리 알리고 싶지요. 앞으로 1.5세나 2세들이 이 땅에서 계속 자라면서 부모님 나라 말을 잊지 않았음 하는 바람과 함께 또 많은 키위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원한다면 그것만큼 자랑스러운 일도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인터뷰가 끝나갈수록 그녀의 한국어 솜씨가 더욱 빛을 내고 있다. 어떻게 이처럼 한국어를 잊지 않은 채 잘 쓰고 말할 수 있느냐는 칭찬이 저절로 나왔다.

“어휴! 칭찬 들으니까 저 지금 막 땀 나네요. 별로 잘하는 것도 아닌데…. 넬슨에 처음 왔을 때부터 한국말 잊지 않으려고 책을 막 읽어댔습니다. 읽을 게 정 없을 땐 집에 있던 백과사전을 읽기도 했고요. 언어를 좋아하고 일본어까지 공부하는데 모국어를 제대로 못한다면 창피한 일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모국어로 계속 일기를 써오기도 했습니다. 아, 그리고 2005년부터는 인터넷에 블로그를 열어 글을 써 온 것도 무척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이제 한창 인생의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젊은 그녀에게 뉴질랜드의 맑고 푸른 잔디처럼 희망과 설렘이 늘 함께 하는 즐겁고 보람 있는 앞길이 펼쳐지기를 바라면서 아쉬운 인터뷰를 마쳤다.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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