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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추석 명절 잘 지내셨어요?



제 칼럼은 뉴질랜드 이야기 쓰는 거지만 이번에는 제가 하도 한이 맺힌 일이 생겨 여러분께 하소연이라도 해보고자 합니다.



한국에서 살면서 고스톱이라는 화투놀이를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사실 우리나라는 고스톱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즐기는 인구가 많다 보니 뜻있는 어른들께서는 이를 걱정하시기도 합니다.



게다가 몇 년 전엔 화투를 주제로 한 영화, ‘타짜’가 흥행에 크게 성공했고 요즘 인터넷을 보니까 그 영화를 다시 리바이벌하는지 드라마 ‘타짜’까지 방영되더군요.



이미 고스톱은 온 식구 모인 명절이면 윷놀이, 송편 빚기 등과 함께 빠질 수 없는 국민문화라는 소리까지 듣지요.



특히 남자어른들 중에는 맥주와 오징어, 화투는 명절에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콤보라고 우기시는 분들도 있다면서요? (어떤 분들은 불리할 때 판 뒤집기에 쓸 어린 조카 한 명도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이 고스톱은 제가 생각해도 중독성이 아주 심각한 도박(?)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부모님께서도 친지가 없는 이곳에서 명절만 되면 같이 칠 상대가 없다고 심심하다면서 딸들에게 고스톱 치자고 조르시니까요.



저야 당연히 몇 십 년 명절판에서 단련된 ‘타짜 부모님’들 실력을 뛰어넘지 못해 번번히 당하고 말지만 고향생각 하시는 부모님 위로 차 함께 치곤 합니다.



제가 하도 억울해 잠도 자지 못했던 그날도 추석이 며칠 전이었던 지라 저희 집 거실 한 구석에는 돌돌 말린 카키색 군 담요와 화투 한 벌이 잘 모셔져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날 저녁 이런 저런 사정 속에 갑자기 저녁 설거지를 놓고 한 바탕 식구 간에 피 터지는 승부가 벌어지게 되었답니다.



사실 그날 설거지가 유난히 많았던 데다 하루 전날 설거지 당번이었던 제가 그걸 안 했던 게 이번 비극의 출발점이 되기는 했습니다.



당연히 꼴찌가 설거지를 하기로 하고 장장 12판의 시리즈가 벌어지게 된 겁니다.



‘아뿔싸’ 그런데 판을 거듭할수록 동생이 앞서가고 저랑 공동 꼴찌이던 아빠는 11판 째, 단 한판에 쓰리고를 부르면서 2등으로 도망가 버리고, 저는 3등인 엄마에게도 종합점수에서 무려 12점이나 뒤졌습니다.



아주 자포자기한 상태로 나선 마지막 12판 째,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정말! 정말 저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엄마와 동생이 연 달아 싸면서(?) 제게 대박 중 대박이라고 할 찬스가 온 겁니다. 저는 두 장, 그리고 엄마와 동생은 모두 한 장씩만 뒤집을 기회가 남은 상태에서 그 때까지 제가 난 점수를 세어 보니 딱 12점. 그대로 스톱하면 엄마와 동점인 3등으로 승부가 나지 않게 됩니다.



이 순간, 저는 저대로 설거지에서 벗어날 탈출구가 보였다고 날뛰고, 엄마는 다 벗어났다가 막판에 뒤집힐 참이라며 소리 지르고, 또 아빠와 동생은 자기들 나름대로 들고 뛰고…, 한 마디로 우리 집은 광란의 도박장으로 변해버렸지 뭡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그 때 제가 난 점수가 딱 12점, 13점도 아니고 14점도 아닌 딱 12 점!



저는 그 때 이 상황에서는 100% 추가 점수 난다는 아빠 말만 믿고 ‘에라, 이판사판이다’ 아주 배짱 좋게 ‘Go!’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세상에나…’, 아니 끝까지 피 한 장 붙지 않고 점수가 나지 않아 무효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이럴 수가 있나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게 이런 거겠지요?’



결국 이어진 연장전에서 기적은 오지 않았고 저쪽 싱크대에선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저를 부르면서 약을 올리더군요. 우거지 죽을상으로 설거지하면서 ‘고~’라고 한 아빠에게 언젠가는 복수(?)하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습니다.





집에서 일본어 공부를 같이 하는 타이 친구에게 고스톱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게 웬걸, 처음인데도 굉장히 빨리 배우더군요. 패 이름도 가르쳐 주었는데, 오동을 한국서는 보통 x라고 부른다니까 너무 웃긴지 한참 웃었습니다.



마침 기다리던 일본어 선생님(일본 아주머님)이 오시더니 한국사람도 ‘하나후다’를 하는 지 몰랐다면서 굉장히 놀라시더군요.



다들 아시겠지만 화투는 사실 우리 게임이 아닌 일본 전래 게임이고 이는 그림과 용어만 보고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요. 용어 중 대표적인 게 ‘고도리’이고 이는 일본어로 ‘다섯’과 ‘새’를 말하고 있더군요.



정작 일본에서는 치는 사람도, 규칙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이는 오래 전부터 야쿠자들이 즐기던 게임이라서 그렇다고 선생님께서 알려주시더군요.



일본과는 디자인도 많이 차이가 난답니다. 그리고 크게 놀란 건 지금은 게임기로 유명한 ‘닌텐도’가 화투를 만드는 회사였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흑싸리’라고 불리는 게 사실 일본에서는 ‘등꽃’인데, 보통 저 같은 한국인들은 이것을 흑싸리로 보고 일본과는 달리 거꾸로 들고 치고 있단 사실입니다.



어쨌건 이번 사건 후 저는 다시는 화투 안 하겠다고 맹세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일본 식민잔재라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에 동의한다기 보다는 맨날 지기만 하는 제 실력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딸 둘만 달랑 데리고 친척 하나 없이 쓸쓸히 명절을 맞으시는 부모님을 생각한다면, 돌아오는 설날에는 기필코 아빠와 엄마에게 복수의 ‘쓰리 고’를 외치면서 위로를 해드리고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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