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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은 공원에서 아들 아이가 농구 골대에 공을 집어넣는다. 열 번 기회를 갖고 슛을 하는데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비켜가 한 골도 집어 넣지를 못했다. 아쉬워하는 아이에게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주었다. 이번엔 열 번의 기회 중 두 번을 넣었다. 2개라도 성공한 게 기쁜지 아들 애는 환호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삶도, 저 농구 골대의 추가 골처럼 한번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잔인하게도 삶은 단 한번뿐이다. 그리고 삶의 끈을 놓아야 하는 죽음 앞에서는, 그것이 아무리 안타까운, 인정할 수 없는 억울한 죽음일지라도 그저 담담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자! 한 번 더 삶의 기회를 줄 테니, 관에서 벌떡 일어나서 이번엔 꼭 멋지게 네 삶의 골대에 공을 넣어봐!” 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한번 밖에 없는 삶이 노여워, 종종 삼 세 번이라는 기회를 우리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위안을 삼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계속 잦은 기침을 달고 살게 되었다. 감기인줄 알고 예사로이 생각을 했는데, 홈 닥터가 처방해준 약을 먹고도 기침이 쉬 나을 생각을 않고 그렇게 몇 주일, 몇 달을 가다 보니 예사로이 생각했던 증상에 예민해 지기 시작해 홈 닥터를 다시 찾게 되었다.
잔뜩 걱정에 빠진 내게 홈 닥터는, 감기 같지는 않고 혹시나 폐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담배를 피우느냐, 가족 병력이 있느냐 등등 시시콜콜 물어대더니, 아무래도 폐 X-ray 정밀검사를 해 봐야겠다는 것이 아닌가.

항상 골골거려 건강 염려증이 심한 내게, “유아 낫 캔서. 돈 워리’ 하며 농담을 하곤 하던 홈 닥터가 이번엔 정밀검사를 해보자 하니, 어쩌면 내가 정말 죽을병이라도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얼마 전, 담배라고는 전혀 피지 않던 지인이 우연히 받게 된 건강검진에서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그 후 단 2개월의 시한부 삶을 살다가 돌아가신 일이 생각나며, 여자니까... 설마 그런 병에 걸리겠나? 병에 대한 편견을 기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일이 또한 내 일일 수도 있겠구나… 아니, 지금 닥터가 그럴 수도 있으니 정밀검사를 해 보자 하지 않는가. 그러니 검사도 채 받기 전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져 오기 시작하는 거였다.

죽음은, 아주 멀리, 마운트 쿡에 쌓여 있는 그림 엽서 속의 하얀 눈처럼 그냥 머나 먼 곳의 풍경이었는데, 갑자기 친근한 척 바싹 다가오려 하고 있으니 정말 아득하고 두렵기만 했다.

난 아직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데…. 이렇게 죽으면 억울해서 어쩌나…. 이렇게 일찍 죽을 줄 알았으면 왜 그렇게 아옹다옹 살았을까…. 우리의 삶에는 분명 힘든 순간만큼 행복하고 기쁜 일도 함께 공존했을 터인데, 왜 힘든 일들과 씨름만 했을까. 갑자기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이라는 그림자 앞에서 지난 내 삶에 대한 후회와 번민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사람들은 말한다. 삶과 죽음은 단지, 길고 짧음의 차이일 뿐, 우리는 모두 유한한 삶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과한 욕심을 버리고 착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평생을 죽음을 연구하면서 살았던, 또한,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죽음 직전의 사람들을 만나고 쓴 ‘인생수업’ 이라는 책에 보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 앞에서 진실된 삶의 속살을 드러내는 독백을 들을 수 있다.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 걸, 그 때 좀더 부지런을 떨었더라면 좀 더 일찍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 사업을 좀더 크게 키웠어야 해 등등. 이런 종류의 독백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는가? 아침 냄새를 맡아 본 기억은? 그때, 빵의 맛을 음미하며 좀 더 꼭꼭 씹어먹을 걸…. 커피의 향기를 좀 더 깊이 들이마시며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좀 더 정겹게 바라볼 걸….

단지 그렇게 일상에서 가벼이 스쳐가며 느낄 수 있었던 사소한 작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산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더 컸다고,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고 그들은 말한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세요?’ 라는 질문에, 저처럼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이 많이 없는데,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잘난 척 하는 아무개도 미워 죽겠는데, 어찌 행복할 수 있느냐고.

그러나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지금 이 순간을 더 충실하게 살라는 단순한 메시지처럼, 잠시나마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던 저는, 지금 마시고 있는 이 커피 한잔이 내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기도 합니다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뭘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으니, 이 밤에는 돈 벌 아이디어를 궁리하며 머리도 좀 아파 보고 아픈 머리 식힐 겸 행복한 마음으로 커피 향에 중독되어 볼까도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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